상대를 없애야 내가 산다는 착각을 벗어나 이제는‘상생의 정치’로 전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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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기고가.한빛문화연구소 대표 해람 강대업(본인제공) |
[코리아 이슈저널 = 코리아 이슈저널]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한 언론계열의 파산 그리고 종교단체와 권력 간의 파열음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뿌리에서 기인한다.바로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산다’는 극단적인 적대 정치에 빠져 '상생의 정신'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95세의 초고령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정당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법리적으로는 5만 명 규모의 조직적 당원 가입과 증거인멸 우려라는 이유를 들었다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에는 짙은 의구심이 남는다.
하필 정부 지지율이 데드크로스로 하락하고 여권 내 권력 구조 갈등과 선거 부정 논란으로 민심이 이반된 시점과 절묘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 눈치를 보며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코로나가 확산되자 신천지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와 데자뷔 상황이 아닌가?
국민들은 묻는다. 과연 이 전격적인 구속이 온전히 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집권 세력의 정치적 위기를 가리고 시선을 돌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액션’인가. 만약 후자라면, 이는 일부 안티 세력의 부정적 감정을 특정 타깃에 집중시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전형적인 ‘죽이는 정치’의 변주에 불과하다.
이러한 ‘죽이는 정치’의 병폐는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중앙미디어 그룹 핵심 계열사 JTBC·중앙일보의 재무적·심리적 붕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갈등을 중재하고 통합을 이끌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어느 순간부터 편향적 정파 이익과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대중의 갈등과 혐오를 부추겨왔다.
이들은 또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중국 자본을 무리하게 유치해 가며 콘텐츠 힘을 키우려다 결국 대중의 신뢰를 잃고 금융 시장에서 외면받는 부메랑을 맞았다.
상대를 자극하고 갈등을 키워 이익을 보려던 방식이 결국 제 살을 깎아 먹는 파탄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논리는 우리 사회 전반, 특히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도 유령처럼 떠돈다.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가 존재하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해야 회사가 수익을 내어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 상생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마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보듯 회사를 망가뜨려야 노동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혹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야 회사가 사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상대를 죽여서 얻은 승리는 결국 자신마저 고립시키는 공멸의 길일 뿐인데도 말이다.
정치의 본령은 얽힌 실타래를 풀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국민과 국가 공동체를 ‘살리는 것’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신천지 총회장의 혐의나 잘못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위기를 덮기 위한 도구로 소모되거나, 특정 집단을 철저히 짓밟아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적대적 카르텔의 자구적 프레임으로 활용된다면 이는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건강한 사회도 만들 수 없다. 천적을 없애면 그 생태계가 무너지는 대자연의 법칙이 교훈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갈등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사회의 기초 체력을 고갈시킨다.
이제는 ‘죽이는 정치’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공존의 공간을 넓혀가는 ‘살리는 정치’, 즉 상생의 정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금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 정치와 언론, 그리고 사회 지도층은 무겁게 되새겨야 한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나라가 위태로을 때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선현들의 결기가 사라진 오늘이 무겁기만 하다.
이 시대 침묵은 금이 아니라 역사에 비굴함으로 남을까 염려되어 심중에 있는 생각을 두서 없이 적었다.
- 자유기고가.한빛문화연구소 대표 해람 강대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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