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웅면 생가서 추모 제례 봉행, 유족․기관단체장․주민등 150여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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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이 낳은 민족대표 박준승 선생, 숭고한 독립정신 기리다 |
[코리아 이슈저널=김종오 기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임실 출신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례가 지난 4일 청웅면 박준승 선생 생가에서 엄숙하게 봉행됐다.
(사)독립운동가 박준승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한경희)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유족과 기관․단체장, 지역주민등 150여명이 참석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삶과 희생을 기리고 그 뜻을 되새겼다.
이번 추모 제례는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박준승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임실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매년 11월 4일은 선생이 3․1운동 주도 혐의로 체포돼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뒤 만기출옥한 날로, 기념사업회는 이날을 기려 해마다 추모 제례를 봉행하며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박준승 선생은 1866년 임실군 청웅면에서 태어나 1891년 동학에 입교했다. 이후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해 반봉건․반외세의 기치 아래 활동했으며, 혁명이 좌절된 뒤에도 민족의 자주와 개혁을 향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05년 동학이 천도교로 개칭된 이후에는 청웅면에 설치된 천도교 임실 제2교구의 교구장을 맡아 지역 교세 확장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16년에는 호남지역 천도교를 이끄는 중책을 맡아 교육과 계몽활동을 통해 민중의 자각을 이끌었다.
1919년 3월 1일에는 손병희 선생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에 참여했다.
이후 일제에 체포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의 독립정신은 고향 임실에도 이어져 같은 해 3월 임실 지역 곳곳에서 천도교인과 주민들이 중심이 된 만세운동이 전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출옥후에도 민족운동의 뜻을 이어가던 선생은 1927년 세상을 떠났으며, 정부는 조국 도립에 기여한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경희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박준승선생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라며“선생의 숭고한 뜻이 지역사회와 후대에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득수 군수는 “박준승 선생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보여주신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은 우리 임실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라며“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관련 기념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해 그 뜻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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